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잭 니콜슨 (문단 편집) == 생애 == [[쇼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니콜슨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 받고 외할머니[* 에설 메이 니컬슨(Ethel May Rhoads Nicholson) 1898년 3월 9일~1970년 1월 6일]와 어머니, 이모 [[https://www.geni.com/people/Lorraine-Smith/4200776|러레인 A. 스미스 (니컬슨)]] 손에서 성장했는데 외할머니를 어머니로, 어머니와 이모는 누나들로 알고 자랐다고 한다. 잭 니콜슨 본인 왈 가난했지만,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고. 실제로 자기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은 그가 '''37세''' 때 일이며, 그때 그의 반응은, '와우, 우리 집은 연기가 좀 되는 집안이었군!' 이 사실은 가족이 밝힌 게 아니라 [[타임지]] 기자들이 '잭 니콜슨의 친부는 과연 누구인가?'를 단독 취재하는 과정에서 먼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며, 그전까지 잭은 자신의 친부가 누구인지 일말의 관심도 없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누나로 알고 있던 어머니는 사망한 상태였다고 한다. 현재 다널드 퍼실로[* 친자확인을 한 적도, 잭 니콜슨 모자와 삼자대면을 한 적도 없다. 다만 젊은 시절 사진 보면 닮긴 많이 닮았다.(...)]란 남성과 몇 명이 친부 후보군에 있지만 어머니 준 프랜시스 니컬슨의 남자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누가 친부인진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친자확인]]도 할 수 있었지만, 잭 니콜슨이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아직도 친부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잭 니콜슨은 이와 관련해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에 관해 인터뷰한 적도 있으나,[[https://people.com/parents/jack-nicholson/|#]] 본인 역시 젊은 날 유명한 바람둥이였던지라, 딸 테서 구런의 유년 시절 그녀의 어머니 제니 구런은 잭 니콜슨이 친부란 사실을 숨겼고,[[https://people.com/movies/jack-nicholson-estranged-daughter-says-wasnt-interested-in-relationship/|#]] 테서 구런 역시 자신이 혼외 자식이란 사실과 친부의 바람기에 크게 상심하며 성도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있다. 결국 잭 니콜슨 본인처럼 아버지의 성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연극]] 무대로 데뷔하였고 [[할리우드]]로 이주한 니콜슨은 당시 [[MGM]]에 속해있던 [[애니메이션]]계의 전설인 해너-바베어러(Hanna-Barbera) 프로덕션에 메신저 보이로 입사하였다. 이때 니콜슨의 예술적 재능을 간파한 윌리엄 해너와 조지프 바베어러로부터 본격적인 [[애니메이터]]가 될 것을 권유받았으나 이미 연기에 뜻을 두고 있던 니콜슨은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고 그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데뷔는 1958년작인 '크라이 베이비 킬러'. [[로저 코먼]]이 제작한 이 영화에서 21살 나이에 주연을 맡아서 기대를 걸었지만 개봉 당시 흥행에서 망하고 평도 최악이었다가 니콜슨이 이름을 알리면서 재평가(?)받게 된다. 1960년에 [[로맨틱]] 영화 'Too Soon to Love', [[레이싱]] 영화 '와일드 라이드'에 나왔고 그리고 이 해에 로저 코먼이 감독을 맡은 [[흡혈식물 대소동]]에서 제법 흥행과 비평을 인정받으며 한동안 로저 코먼이 제작, 감독한 여러 영화에 나왔다. 로저 코먼 옹과 같이 참여한 영화들 보면 1963년작인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했던 대선배 [[보리스 칼로프]]와 같이 '테러'라는 호러물에 나와 호평을 받는다. 이 작품은 로저 코먼이 제작, 감독했고 당시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감독을 같이 맡았으며 잭 니콜슨도 제작에 같이 참여했다. 그리고 코먼이 감독한 호러영화 '[[갈까마귀]]'에서도 칼로프와 [[빈센트 프라이스]]라는 거물급 호러 배우와 같이 연기했으며 꾸준히 여러 장르에 조연과 주연을 번갈아 나오며 활동했다. 1969년에는 흥행과 비평에 대박을 거둔 '[[이지 라이더]]'에서 조연인 핸슨을 연기하며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린다. 1974년작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1974)|차이나타운]]'으로 흥행과 평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그 다음해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활동을 했다. 주로 1970년대 중반(1974~1975)의 두 영화를 커리어하이로 치지만, 딱히 전성기가 없이 2000년대까지 매 순간 열심히 활동하며 인상을 남긴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흔히 잭 니콜슨 하면 [[정신병]]자 전문배우의 이미지와 그 킬러 스마일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필모그래피를 대충 훑어봐도 알 수 있듯이 연기의 폭이 굉장히 넓은 배우다. 장르별 대표작은 대충만 꼽아도 아래와 같다. * '''[[느와르]]:''' [[차이나타운(1974)]], 프리찌스 오너, [[디파티드]] * '''로맨틱 코미디/코미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성질 죽이기 * '''드라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어바웃 슈미트]], [[버킷리스트(영화)|버킷 리스트]] * '''호러:''' [[샤이닝(영화)|샤이닝]], 울프 * '''사회고발:''' [[이지 라이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어 퓨 굿 맨]] * '''히어로물:''' [[배트맨(1989년 영화)|배트맨]] * '''사극:''' 레즈(1981), 극작가 [[유진 오닐]] 역 굉장히 다양한 개성과 역할의 캐릭터들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훌륭한 명배우다. 평론가들은 클래식 할리우드 시절 대스타였던 [[제임스 캐그니]]를 잇는 배우로 보고있다. 둘이 보면 이미지가 비슷하다. 스탠리 큐브릭도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있다. 2010년 이후로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고 소식도 없다가, 2013년에 뜬금없이 원인 불명의 [[기억상실]]하는 병에 걸려 배우에서 은퇴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거짓. 그에게 제안되었던 배역이 기억상실에 걸리는 역할[* [[알렉산더 페인]]의 네브레스카 주인공 우디. 페인하고는 어바웃 슈미트와 협업한 적이 있다. 이 역은 결국 [[로라 던]]의 아버지인 브루스 던에게 넘어갔고 이 역으로 브루스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이라 이것이 와전된 것. NBC 스페셜 앵커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건강하게 잘 있고, 대본 읽으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신작에 나오지 않다가 잭 니콜슨의 절친한 친구이자, 1969년작 '이지라이더'에 함께 출연한 [[피터 폰다]]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연기 은퇴한 상태이지만,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2017년에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제작할 [[토니 에드만]] 리메이크 작에 [[크리스틴 위그]]와 같이 출연한다는 기사가 떴다. 맡을 역은 [[페터 지모니셰크]]가 맡았던 빈프리트/토니 에드만 역. 아직 본인의 입장이 안 나온 상태라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발표 당시 영화를 매우 마음에 들어해 파라마운트 임원을 꼬드겼다는 후일담이 밝혀진걸 보면 일단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출연이 불발됐다. 2019년 시점에서 82세의 고령이니 사실상 2010년 출연작 에브리씽 유브 갓(원제: How Do You Know)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듯하다. 2019년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신작 홍보 인터뷰에서 니콜슨에게 출연 제의를 했으나 자신은 은퇴했다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플래너건 감독에 의하면 니콜슨은 2018년 [[레디 플레이어 원(영화)|레디 플레이어 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같은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